달팽이의 약속ㅣ변화의 시대를 산다는 건

달팽이의 약속ㅣ변화의 시대를 산다는 건

글 | 일송  · 방송 | 전금화

    1970년대 말, 나는 연변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여났다.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우리 마을은 두대의 버스로 외부세계와 련결되여 있었다. 아침 7시에 우리 마을에서 출발하는 연길버스와 8시에 우리 마을을 경과하는 화룡버스. 그때 버스는 정원이 없었다. 비비고 오를 수 있는 만큼 싣고 다녔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언제 한번 그 버스를 타고 화룡이나 연길에 가보는 것이 꿈이였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좀처럼 쉽게 오지는 않았다. 하여 운 좋게 도시 나들이를 한번 한 친구는 한달 정도는 그 체험을 우려먹을 수 있었다. 명절 때이면 또 점심부터 마을 뒷산에서 뛰놀며 오후 네시즈음 버스타고 올 도시친척(혹은 그 친척이 사가지고 올 도시과자)을 목 빠지게 기다리곤 했다. 가진 것이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일종의 외부세계에 대한 동경밖에 없던 그때가 있었다. 버스는 그 동경을 싣고 다녔다. 마을에 오는 버스가 현 소재지인 화룡과 자치주 소재지인 연길에서 오는 두대 밖에 없으니 시골아이들의 세계도 화룡과 연길이 전부였다. 우리에게 세상은 버스가 통하는 지역까지였다.
    화룡이나 연길이 다가 아니라 세상은 보다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유선텔레비죤의 보급이였다. 1990년대 중반, 우리 집에서도 텔레비죤을 유선과 련결시켰다. 연변방송, 길림방송, 중앙방송 도합 세 개밖에 안되던 방송 프로그램이 유선과 접하면서 바로 30여개로 늘어났다.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연변 밖에 보다 큰 세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과서에 실린 리론적 지식이였지 실감으로 다가오는 현실은 아니였다. 실감적인 세계는 연변이 전부였으며 나의 생각의 기초와 범위도 연변을 넘어난 적이 없었다. 이런 나에게 텔레비죤을 통하여 전해오는 30여개 성급방송은 이 지역들을 나의 일상에 보다 가까이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텔레비죤을 통해 본 세계는 좀더 생동한 리론들이지 결코 체험적인 삶은 아니였다. 
    연변에서 대학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해오던 나는 2000년대 초반에 한국 류학의 길에 오르며 처음으로 연변을 벗어나 보았다. 한국, 같은 민족의 국가로서 함께 이밥에 김치와 장국을 먹으며 한복을 입고 춘향이와 리도령의 사랑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지만 나에게 체험적으로 다가온 한국은 낯선 점이 더 많았다. 흔히 한 사회에 대하여 론의 할 때 정치, 경제, 문화 등 방면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과 한국은 정치와 경제에서 차이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차이가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나와 한국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도 존재한다는 것이였다. 나와 한국의 동년배들은 기초교육으로부터 서로 다른 체계 속에서 상이한 교과서를 통하여 지식을 배워왔으니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몇 년간의 노력을 통하여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기본적인 상식들을 익히고 한국식의 사유방식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류학생활도 끝났다. 
    2000년대 말기, 나는 한국 류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북경에서 직장을 찾았다. 선진국에서 꽤 높은 학위도 땄으니 중국으로 돌아가면 당연히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품위있는 삶을 살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는데는 한달도 걸리지 않았다. 직장 월급으로 품위 있는 삶은 고사하고 괜찮은 세집을 하나 구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였다. 일년 월급을 일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직장 부근에 집을 한평정도 살수 있었다. 집세와 월급의 차이가 나의 경제관을 변화시켰다면 왕복 세시간의 출퇴근길은 거리관념을 변화시켰으며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 차고 넘치는 젊은이들은 이 사회에서의 나의 경쟁력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 도시에서 함께 생활하는 절대다수의 사람들과 내가 지금까지 서로 다른 코스에서 달리기를 련마하였기에 달리는 방식이 서로 다름을 느꼈다. 내가 배운 방식이 이 도시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였다. 내가 나의 방식을 고집할수록 나는 이 도시와 멀어져야만 했다. 나와 북경의 차이는 나와 한국의 차이보다 더 컸다. 뒤늦게나마 이 도시의 방식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하기를 십년이 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이제는 북경이 나의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몇 년은 한밤중의 귀가길에 그때까지도 막혀있는 차들을 바라보며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지?”하고 생각하거나 고향에서는 전혀 먹지 않던 면을 앞에 두고 “내가 왜 아침에 이것을 먹지?”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면도 제법 잘 먹고 도시의 번잡함이 일상의 한부분으로 되여버렸다.
    전통적인 농경사회가 산업화, 도시화, 정보화를 맞아 그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배우고 변화된 환경에 따라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인 것 같다. 나와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도 북경에서도 이런 보편성 외에 내가 배웠던 기초교육이 현지의 대부분 사람들의 것과 서로 달랐기에 변화와 차이를 더욱 크게 느꼈던 것 같다. 또한 서로 달랐기에 그 부분이 우세가 되였던 점도 없지 않다. 우세는 살리면서도 부족한 부분을 빠른 시간 내에 보충해오려다보니 남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변화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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